미국의 자존심이요. 뉴욕에 얼굴이던 세게 무역센터 110층
쌍둥이 건물이 “비행기 폭탄 자살 테러”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악마의 폭탄 테러로 불 과 연기를 품어내며
무너져 버렸다.

1966년부터 7년에 걸쳐 건축한 과학 문명이 1시간 40분만에
살인 문명으로 바뀌면서 모래와 먼지로 무너져 내렸다. 2,400
도의 불길 속에서 빌딩 인구와 소방관, 경찰관 등 3,052명의
희생자들이 철근과 시멘트 속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져 버렸다.

인간이 저지른 죄악이요, 과학이 연출한 참상이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수 있으며 얼마나 잔인할수 있는가를 스스로
보여준 죄악이요. 비극이다.

구약에 기록된 바벨탑이나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인간들의
교만과 부패로 하나님이 내리신 징계라고 하지만, 뉴욕의 911
테러는 무슨 죄이며 누구에게 내리는 벌이냐!?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 일지라도 악마의 손을 피할수 없다면,
우리가 믿는 ‘야훼’ 는 그들이 믿는 ‘알라’ 보다 허약하단 말일가!?
하나님도 그의 아들 아담을 마음대로 못해서 죄악을 잉태했고,
가인은 질투와 미움으로 동생 아벨을 죽인, 인간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으니 우리는 가인의 피를 받은 후예임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죄악은 그 바탕이 질투요 미움이다.
질투는 인간이 가진 파괴적이면서 강력한 감정의 표출이다.
20세기 나치즘과 공산주의도 미움과 질투로 민족의 우월성, 계급도
없는 사회를 외치면서 잘 사는 민족을 시기하고, 발전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무능을 포장하려는 위선의 정치 철학이었다.

인간은 나보다 남들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면 질투의
노예가 된다. 스스로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저주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를 보면서 “생각보다 많이
죽었다”고 좋아하며 알라신은 위대하다고 축배를 들었다.

이번 테러가 종교의 갈등, 문화의 충돌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못사는 자가 잘 사는 자를 시기한 ‘질투’ 가 바탕이다. 미련한자는
즉시 분노하고 현명한자는 천천히 분노한다고 했다. 미국은 어떻게
분노할 것인가.

분노와 미움으로 원한의 폭력이 반복하는 역사는 결코 평화를 가져
오지 못한다. 그러나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계속 있을 것이다.
세계 평화는 지구상에 모든 인간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고 잘 사는
것이다. 미움과 질투는 평등한 삶에서 녹아지는 것이다.

회교권에 민주화가 이룩되고 국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노력해서 잘사는 나라를 만들 때 제2의 9.11 테러는
다시없을 것이다.

추모의 밤에서 머리숙여 기도하는 우리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마음은 십자가 아래 하나되여 거룩한 찬송으로
메아리 쳤지만 부모, 남편, 형제, 자식을 잃고, 찢어진 가슴으로 슬픔
속에서 살아온 유족들, 그들에게 악마들을 용서하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화염과 분진으로 110층의 위용이 바람같이 사라진 거리 ‘그라운드 제로’
에 성조기 위에는 석양빛으로 깊게 느러서는 뉴욕 빌딩의 그림자만이
‘우리를 기억하는 그대들이 있어 슬프지 않다’. 는 말을 소리 없이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미국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9.11 을 평화의 날로 선포했지만,
9.11은 기념(Celebration) 하는 날이 아니라 기억(Remember)하는
날이다. 우리들은 이날을 영원히 기억 할 것이다!!

(테러전의 무역 쎈터 모습)
우리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지난 2001년 9월 11일 얼굴없는 테러 집단이 여객기를 납치하여
비행기 폭탄공격으로 뉴욕에 세계무역 센터 건물 두 개를 폭파시켜
5천여명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입혔다. 이어서 워싱턴의
국방부도 비행기 폭파공격을 받았다.

미국의 정치 경제의 심장부인 워싱턴과 뉴욕의 공격은 테러가 아닌
전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연속적으로 일어난 테러공격은 미국인과
전 세계를 경악케 했으며 인간의 잔악성을 보여준 사상최대의 잔인한
만행이었다.

남북전쟁이후 처음으로 당하는 전쟁, 1941년 일본군 가미가제
특공대가 진주만을 폭격했던 자살특공대 이후 60여년만에 다시
당하는 미국 심장부의 자살 비행기 폭탄 테러 사건이다.

그러나 미국은 침착했다. 동요하지 않았다. 조용히 슬퍼했고 조용히
분노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즉시 분노하지만 현명한 국민은
두고두고 분노한다.

미국 국민은 “어제는 슬펐지만 오늘은 자랑스럽다” 라고 행동으로
외치고 있다. 헌혈을 위해 병원에 줄을 섰다. 희생자의 가족을위해
헌금 운동이 벌어졌다.

젊은이들이 지원입대로 모여들었다. 봉사 희망자들이 넘쳐나고
교회마다 단체마다 구국 기도회로 모였다. 국민들은 성조기 세우기를
시작했다. 조국과 국민을 지키고 세계평화를 지키자고 건물마다
집집마다 자동차에도 성조기는 펄럭이고 있다. 크고 작은 성조기
물결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나는 미국 비상사태에 국민이 하나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공연히
마음이 허전해진다. 만일에 내 조국, 한국이 이런 비상사태 내지는
전쟁사태가 일어났다면 과연 우리 국민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니면 월남전 때 사이공 탈출같이 서울 탈출로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었을까?

태극기가 세워지고 태극기 물결이 나라를 지켰을까?
인공기와 태극기가 싸우면서 민족비극을 연출하는 부끄러움은
없을까? 한국의 남북관게와 남북갈등 현실은 우리에게 의심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국가비상사태를 맞이 했을 때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보다는 “우리 모두 굳게 뭉쳐 내 나라 내 민족 지켜나가세”가
더 현실적인 애국이요 구국이 아니겠는가?

6.25를 겪은 세대, KAL 폭파사건, 아웅산 폭파사건을 지켜본
우리는 노파심과 우국충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덧없이
괴롭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