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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티안 의 고대도시 페트라 유적

재수리 2007. 9. 18. 00:19

 

고대민족 나바티안들이 건설한 도시 세계 新 7대 불가사의 [페트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150킬로미터.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묘사됐듯이 페트라는 전체가 붉은 사암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바티안 족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이곳 암석지대를 찾아내 도시를 건설했다. 바위는 산화 철이 장미 봉오리 같은 화려한 무늬를 새겨넣은 사암이었고, 나바티안들은 그 연무른 사암을 쪼고 깎아 숱한 건축물을 남겼다. 깎아내기 쉬운 사암이기에 비를 피할 동굴을 뚫기 쉬웠고, 신전과 무덤을 깎기도 쉬웠다.

 

사방이 절벽으로 방어된 신비의 천연요새로, 마치 지하 왕국을 연상시키는 도시다. 분쟁이 끝없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불과 한 시간이면 요르단 국경을 넘는다. 작은 나 라이지만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4시간 거리에 신비한 도시 페트라가 숨어 있다.

 

 

기원전 이 땅의 고대민족 나바티안들이 만든 도시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왕의 길’ 고속도로 를 타고 남하하면 모세의 계곡이 나온다. 페트라는 그 계곡에 있다

 

그리스·로마 양식과 나바티안 특유의 건축양식을 혼합한 도시를 그들은 ‘렉무(Rek Mu)’라 불 렀고, 훗날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진 뒤 그리스인들은 ‘페트라(Petra)’라 불렀다. 모두 ‘바위’라 는 뜻이다.

 

서기 2세기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에도 번성했지만 페트라는 4세기 말, 로마가 제국의 중심지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세계의 동과 서를 잇던 실크로드가 그 축을 페트라에서 북쪽 다마스쿠스 쪽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교역에서 오는 부(富)를 상실한 뒤로 페트라에는 700여 년 동안 나바티안의 후예 베드윈 족만 살고 있다가 1812년에야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 헤매던 스위스 탐험가 버크 하르트에 의해 발견 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2007년 세계 新 7대 불가사의 유적으로 선정된 곳이다.

 

 

 

 

 

 

 

 

 

 

 

 

 

 

 

 

 

 

 

 

 

 

 

 


 

 

 

 

 신비한 고대도시 페트라(1)

페트라 유적에는 500여개의 무덤을 포함해 800여개의 유적이 산재해있습니다.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페트라답게 볼거리도 많은 편입니다.
페트라 유적은

시크(The Siq)부터 알-카즈네(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를 거쳐
페트라 시티 센터(Petra City Center) 알 데이르(Al-Deir(수도원, The Monastery))
까지
일직선으로 길과 계단을 통해 연결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표소에서부터
알-데이르
까지 걸어가는 데만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규모입니다.
더군다나 출입구가 하나이기 때문에 갔던 길을 매번 돌아와야 합니다.

때문에 모든 내용을 한번에 다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페트라의 위치 및 역사
(2) 페트라의 일반 정보(펌)
(3) 입구에서 알 카즈네까지(펌)
(4) 노천극장과 왕실 무덤군(펌)
(5) 페트라 시티 센터에서 알 데이르까지(펌)
(6) 알 마그마 하이킹 루트(펌)
(7) 하이킹 정보(펌)

첫 번째 글(페트라의 위치 및 역사)을 제외하고는
트래블게릴라(http://www.travelg.co.kr/
)에 게시된
페트라 여행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퍼 온 것입니다.
단, 블로그 구성상 약간의 편집을 하고 일부 이미지를 교체했습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를 보면,
깊은 계곡 속에 바위를 깎아 만든 거대한 신전이 나옵니다.
성배가 감춰진 곳으로 설정되어 있죠.
 
영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성전'의 한 장면

판타지동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이 곳은 물론 실제 존재하며,
요르단(Jordan)이 국보 1호로 지정해놓은 '페트라(Petra)'라는 고대 도시의 일부입니다.
1985년 12월 6일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근래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방문해 볼 요량으로 이것 저것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페트라가 워낙 크고 수백 개의 유적이 있다 보니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세히 조사한다는게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 했을즈음,
트래블게릴라(http://www.travelg.co.kr/)에서 페트라 여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발견하고
그대로 퍼왔습니다.
(블로그 구성상 약간의 편집은 필수(?)였습니다... ^^;)

한번에 다 올리기는 너무 많은 양이기 때문에
원본의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올립니다.
첫 번째 글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퍼온 글입니다.

(1) 페트라의 위치 및 역사
(2) 페트라의 일반 정보(펌)
(3) 입구에서 알-카즈네까지(펌)
(4) 노천극장과 왕실 무덤군(펌)
(5) 페트라 시티 센터에서 알-데이르까지(펌)
(6) 알-마드바 하이킹 루트(펌)
(7) 하이킹 정보(펌
)


(1) 페트라의 위치 및 역사

위 치

 
페트라의 위치

페트라는 요르단의 남부에 있는 고대 도시 유적으로
여의도 면적의 3~4배에 이릅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으로부터 서남쪽으로 262km 떨어진 곳으로,
거대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해발 950m의 산악지대에 위치하며
최고 높이 300m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지역은 교역로의 교차지점이었기에
과거에는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역 사
페트라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000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1. 성서속의 페트라
페트라는 성서와 많은 연관이 있는 지역입니다.
모세(Moses)가 이스라엘 민족과 더불어 이집트(Egypt)를 탈출하던 시기인
기원전 1400여년 경에는 이 지역을 '셀라(Sela)'라고 불렀으며,
에돔(Edom)과 모압(Moab)의 접경지역이었습니다.
기원전 1200여년 경까지 불려졌던 '셀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위'라는 뜻이며,
'페트라'는 헬라어(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 지역은 아브라함(Abraham)의 또 다른 후손이었던 에돔족의 수도였습니다.
(에돔은 성서에 등장하는 야곱(Jacob)의 형, 에서(Esau)의 별칭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경로

성서(민수기 20장 14절~21절)에 보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38년간의 광야에서의 방황을 마치고
두 번째로 가데스(가데스 바네아, Kadesh Barnea)라는 지역에 이르러,
가나안(Canaan)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은 지름길인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통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셀라(페트라)를 거쳐가야 했기 때문에
모세는 에돔왕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에돔왕은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험한 광야길을 빙 돌아서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후에 이 일로 에돔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됩니다.
페트라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모세의 형 아론(Aaron)이 사망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 근처에서 아론의 장사를 지냅니다.
그래서 지금도 페트라에는 아론의 무덤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페트라에서 3km 가량 떨어진 곳에는
모세가 지나 갔다고 하여 '와디 무사(Wadi Musa, 모세의 계곡)'라고 불리우는 곳과
'모세의 샘'이라고 불리우는 우물이 여러 곳에 있어서
전세계의 많은 순례객들을 불러 모으기도 합니다.

2. 나바테아인의 페트라
 
나바테아인

기원전 7세기 경부터
아라비아반도의 북동부에서 건너온 고대 아랍계 유목민들이
요르단 남부에 정착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나바투(Nabatu)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인들은 나바테아인(Nabataeans)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은 직접 대상무역을 하거나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함으로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차츰 지금의 시리아, 이라크 서부 등에까지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전성기 때의 나바테아인들의 세력권(붉은 부분)

기원전 4세기경에 나바테아인들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왕조 세력권 내에 있었으나,
자신들의 나라인 나바테왕국을 세워
과거 에돔족의 수도였던 지역에 그들의 수도를 건설하게 됩니다. 
나바테아인의 말로는 '라킴(Rakeem)' 혹은'레켐(Rekem)'이라고 불렀으며,
후일에 페트라 혹은 크세르아셀라고 불리우게 될
교역중심의 요새 도시를 건설한것입니다.
기원전 312년에는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 휘하의 장군이었던
안티고노스(Antigonos) 1세가 파견한 원정군에
완강히 저항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침내는 기원전 1세기 무렵
하리사트 3세(혹은 아레타스 3세(Aretas III))에 이르러 통일정권이 수립되었고,
하리사트 4세(혹은 아레타스 4세) 때에 전성기를 맞아
페트라는 3만명의 인구가 거주할 정도로 번성하게 됩니다.
 
전성기의 페트라

페트라는 연중 강수량이 10~15cm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물이 부족한 지역입니다.
이에 나바테아인들은 산을 깎아서 터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시설을 만들고,
바위를 파서 수로를 만들고
각각의 주택에까지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상수도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사암을 파서 수로시설을 만들었기 때문에
물이 잘 스며드는 단점을 보완하기위해
회반죽으로 방수처리까지 하였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은 이 수로의 물을 이용하여 농사까지 지었습니다.
중요한 대상무역로인 왕의 대로로 통하는 교차점에 건설된 페트라는
한동안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페트라의 수로

 
페트라의 수로관

3. 로마의 페트라
대상무역 상인들로부터 징수하는 통행세 등으로 인하여
페트라는 점점 더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 제국을 건설중인 로마인들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마침내 로마제국의 군대는 페트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원정군대는 돈많은 페트라의 나바테이아인들에게 매수 당하여
군대를 철수시켜버렸고,
두 번째 원정군대는 로마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철수하였습니다.
마침내 로마의 5현제(賢帝) 중 2대 황제였던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 때인
서기 106년에 이르러 로마제국은 페트라를 점령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은 지금의 시리아 땅인 보스라(Bosra)에
점령된 아라비아의 수도를 정하고 총독을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페트라 지역은 아라비아 페트리아(Arabia Petraea)라는 행정구역으로 통치하였으나,
나바테아인들의 상업활동은 보장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도시 한가운데 도로를 닦아서 대상무역에 도움을 줌으로
페트라는 제라쉬(Jerash)에서 다마스커스(Damascus)를 잇는
교역로의 중심도시로 더욱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페트라의 로마 게이트(Petra Roman Gate(=테메노스 문(Temenos Gate))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4세기 들어서 로마제국이 쇄퇴하면서 동,서 로마제국으로 분리되고,
그 중심지가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로 옮겨짐에 따라
교역로의 중심도 북쪽의 다마스커스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페트라의 건물 일부는 교회로 변모하여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역로의 중심에서 벗어나게된 페트라에는
상인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수입원이 끊긴 나바테아인들은 하나 둘 살길을 찾아 사막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서기 363년과 551년에 두 차례에 걸친 지진으로
페트라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됩니다.
급기야는 수자원 마저 고갈되자 모든 거주민들이 도시를 떠나버리고,
페트라는 폐허가 된 채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잊혀진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베두인족

그 후 무슬림과 십자군 사이의 종교전쟁 중에
십자군 군대가 요새를 짓기 위해 12세기에 잠시 거주했을 뿐
 페트라는 잊혀진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그 근처를 오가며 살아가는, 나바테아인의 후예인 베두인(Bedouin)족들만이
전설처럼 과거 페트라의 번영을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4. 잊혀진 도시의 발견
 
요한 루드비그 부르크하르트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였던
요한 루드비그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는,
아프리카 탐험여행을 가기 위해 팔레스타(Palestine)인 지역을 가로지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상인들로부터
잊혀진 고대도시 페트라에 대해 듣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의 관심은 온통 산속 깊은곳에 숨겨져 있다는 신비한 고대도시에 집중되었고,
마침내는 아프리카 여행을 취소하고 페트라를 찾는 일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는 베두인족 안내인을 동반하고
사해(Dead Sea) 남쪽에 있는 깊고 좁은 골짜기로 들어섭니다.
긴 협곡이 끝나고 넓은 광장에 도달했을 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에 바위를 깎아 만든 아름답고 거대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수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져 있었습니다.
수세기동안 잊혀졌던 고대 도시는
마침내 전 세계에 그 존재를 드러내놓게 되었습니다.

 

 신비한 고대도시 페트라(2)

페트라 유적에는 500여개의 무덤을 포함해 800여개의 유적이 산재해있습니다.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페트라답게 볼거리도 많은 편입니다.
페트라 유적은 시크(The Siq)부터 알-카즈네(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를 거쳐
페트라 시티 센터(Petra City Center)알 데이르(Al-Deir(수도원, The Monastery))
까지
일직선으로 길과 계단을 통해 연결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표소에서부터
알-데이르
까지 걸어가는 데만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규모입니다.
더군다나 출입구가 하나이기 때문에 갔던 길을 매번 돌아와야 합니다.

때문에 모든 내용을 한번에 다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페트라의 위치 및 역사
(2) 페트라의 일반 정보(펌)
(3) 입구에서 알 카즈네까지(펌)
(4) 노천극장과 왕실 무덤군(펌)
(5) 페트라 시티 센터에서 알 데이르까지(펌)
(6) 알 마그마 하이킹 루트(펌)
(7) 하이킹 정보(펌)

첫 번째 글(페트라의 위치 및 역사)을 제외하고는
트래블게릴라(
http://www.travelg.co.kr/)에 게시된
페트라 여행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퍼 온 것입니다.
단, 블로그 구성상 약간의 편집을 하고 일부 이미지를 교체했습니다.



 

(2) 페트라의 일반 정보


페트라 입장권 구입하기

페트라 입장권은 유적 입구에서 50m 떨어진
페트라 방문자 센터(Petra Visitor Center)에서 구입해야합니다.
 매표소는 계절에 따라 오픈 시간이 약간씩 다릅니다.
10월에서 4월 사이는 06:30~17:00, 5월에서 9월 사이는 06:00~17:30에
티켓 구입이 가능합니다.
페트라 방문자 센터는 호텔들이 즐비한 와디 무사(Wadi Musa, 모세의 계곡)에서
페트라 유적과 가까운 고급 호텔 뫼벤픽 호텔(Movenpick Hotel)을 지나면 보입니다.

 
페트라 매표소

 
페트라 입장권

티켓은 1일/2일/3일권으로 구분해서 판매하며
3일권은 하루가 보너스로 주어지기 때문에 4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금은 각각 21JD(디나르)/26JD/31JD로 비싼 편이며
학생 할인 혜택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1US달러는 약 0.7JD(디나르)입니다.)
그러나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50%가 할인됩니다.

또한 2일 이상 입장권에는 본인의 이름과 서명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필요치 않습니다.)
2일 이상 관람 가능한 티켓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환불이 불가능하므로
구입 전에 적당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입장권은 페트라 방문자 센터에서 50m 정도 떨어진 유적 입구에서 검사하며,
시크(The Siq)로 들어가기 전에 재확인을 합니다.
유적 내에서는 입장권을 확인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페트라 유적 자체가 시크를 통해서 드나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요르단 사람들은 1JD만 내면 되고,
페트라를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압둘라 요르단 국왕뿐입니다.


페트라의 지도 

http://www.atlastours.net/jordan/petra_map.html
 
페트라의 안내도

http://www.go2petra.com/guide_inside_clickmap.htm


페트라 방문자 센터 Petra Visitor Center

 
페트라 방문자 센터

페트라 입장권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방문자 센터답게
페트라 유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곳입니다.
페트라 유적에 관한 기본적인 안내실을 겸비하고 있는데 저녁 9시까지 개방됩니다.
방문자 센터 주변에는 주차장, 기념품 상점, 서점과 화장실 등의 부대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페트라 방문자 센터 주변의 상점들

또한 전문 가이드를 섭외해 주기도 하는데 한국어 가이드는 (당연히) 없습니다.
영어 가이드를 하루 동안 대동할 경우 가이드 비용은 35JD 입니다.


여행 시기 및 준비물

페트라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2월에서 5월사이와 10월 중반에서 11월까지 입니다.
4월의 평균 기온 11~22도, 10월의 평균 기온 14~24도 정도로
이 시기가 여행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페트라는 평균 해발이 1,100m기 때문에 1월의 경우 밤 기온이 5도 정도로 추운 편이이고,
또한 여름에는 낮 기온이 35도 이상 오르기 때문에 매우 덥습니다.
  
페트라에서 간간히 만나게 되는 야외 찻집

페트라 유적은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시크를 통해 출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동안 걷는 양도 많은 편입니다.
따라서 충분한 수분 섭취와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장비가 필수 요소입니다.
모자와 선그라스, 선블럭 크림 등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또한 구두나 슬리퍼 보다는 편한 운동화를 싣는 게 좋습니다.
또한 유적 내부에 저렴한 식당이 없기 때문에
간단한 점심을 챙겨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드나들기

 
와디 무사 마을(Village of Wadi Musa)

페트라 유적과 가장 가까운 도시는 와디 무사(Wadi Musa)
유적과 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뫼벤픽 호텔(Movenpick Hotel), 크라운 프라자 호텔(Crown Plaza Hotel) 같은 호텔들은
일류 호텔로 페트라 
유적과 가까와서 걸어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 호텔들은 와디 무사 중심가에 위치해 별도 차량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호텔에서 무료 픽업 서비스를 제공해 줍니다.
보통 아침과 오후에 두 번 픽업을 해주는데,
아침에 한 번만 해주는 곳도 있으므로 호텔 투숙 시 픽업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오후 픽업 시간은 페트라 유적으로 들어가면서 미리 말해 두어야하고,
정해 놓은 시간에 호텔에서 차가 와서 기다려 줍니다.
개별적인 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택시가 유일하며
외국인이라면 거리에 상관없이
페트라 입구에서 와디 무사의 호텔까지 1JD를 요구합니다.
 
뫼벤픽 호텔(Movenpick Hotel)


페트라 유적 내에서의 교통정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페트라를 걸어서 다닙니다.
시크부터 알 데이르(Al-Deir(수도원, The Monastery))까지
두 시간 넘는 길을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나옵니다.
하지만 방대한 유적을 무작정 걷는 건 많은 체력을 요합니다.
힘들다면 쉼 없이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마차, 당나귀, 낙타 호객꾼들과 흥정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자들에게
자신들의 탈 것을 '에어컨 택시‘라고 부르며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당나귀와 낙타 등 페트라 내에서의 교통편은 다양합니다.

말은 페트라 매표소에서 시크까지만 탈 수 있습니다.
800m 정도를 가는데 필요한 공식 요금은 7JD 입니다.
(말 주인은 5JD, 페트라 관리 위원회는 2JD를 챙긴다고 합니다.)
말 주인과 직접 흥정할 경우에는 싸게 탈 수도 있습니다.

마차(horse carriage)는 입구에서 2km 떨어진
알-카즈네(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까지만 운행이 허용됩니다.
페트라 방문자 센터 Petra Visitor Center에서 예약이 가능하며
2명 탑승 기준으로 20JD가 공식요금입니다.

당나귀와 낙타는 정해진 요금 없이 흥정을 해야 합니다.
당나귀의 경우에는
카스르 알-빈트(Qasr Al-Bint, 파라오 딸의 궁전)에서 알-데이르까지는
3JD 정도에 흥정이 가능합니다.
낙타의 경우 장거리 이동보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에게 애용됩니다.


추천 일정

페트라 추천일정을 구성할 때 명확하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반나절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루면 충분하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명쾌하게 답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페트라의 기본적인 볼거리를 보는 데는 하루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루를 가지고는 페트라의 제 맛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시간과 돈이 허락한다면 이틀을 머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페트라 입구에 해당하는 시크(The Siq)와 페트라 대표 볼거리 알-카즈네(Al-Khazneh)

1일 코스

하루 종일 쉼 없이 걸어 다닌다면 페트라의 하이라이트를 하루 동안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력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시크에서 알-데이르까지 걸어갔다 온다면 대략 8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시크를 시작으로
알-카즈네(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
왕실 무덤(Royal Tombs)
페트라 시티 센터(Petra City Center)
알-데이르(Al-Deir(수도원 The Monastery))
시크로 되돌아 나오기까지 가능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다면 역시 시크를 시작으로
알-카즈네(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
알-마드바(Al-Madbah(제물을 바치는 언덕, High Place Of The Sacrifice)) 하이킹
페트라 시티 센터(Petra City Center)
알-데이르(Al-Deir(수도원 The Monastery))
왕실 무덤(Royal Tombs)
시크로 되돌아 나오기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알-마드바알-데이르까지 힘겨운 두 개의 산길을 올라야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루트는 대략 10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2일 코스

주요 볼거리와 하이킹을 코스를 적절히 조합한 여행이 가능할 뿐 아니라
충분한 휴식도 겸할 수 있습니다.
1일 코스를 나눠서 하거나 하이킹 코스와 연계한 루트를 만들면 됩니다.
알-마드바(Al-Madbah) 하이킹 코스 외에,
제벨 알-쿱타(Jebel Al-Khunbtha)에 올라 알-카즈네를 내려다보는 하이킹 코스가 가능하며
시크 대신 와디 무트림(Wadi Muthlim)을 통해
페트라 유적 내부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3일 코스

3일의 시간이라면 페트라 유적을 여유 있게 그리고 자세히 여행할 수 있습니다.
보너스로 하루가 더 주어지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4일간 여행이 가능합니다.
조금 멀리 떨어지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움 알-베이야라(Umm Al-Beyyara)제벨 하룬(Jebel Haroun)은 물론
리틀 페트라(Little Petra)로 불리는 시크 알-바리드(Siq Al-Barid)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이어서 3편에...
신비한 고대도시 페트라(3)-입구에서 알 카즈네까지(펌)


(원본)
글/사진/편집 안진헌 www.travel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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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a.p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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